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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0.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영화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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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초등학교 시절에 산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모두들 나뭇가지를 준비하고 큰 나무를 치기도 하고, 서로의 나뭇가지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사였고 멋진 칼잡이였죠. 그렇게 하루를 놀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곤하게 잔 기억이 있습니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원제는 ‘Bridge to Terabithia'입니다. 테라비시아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뜻이겠죠. 대부분의 외국 영화를 한글 제목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제목은 원래의 제목보다 잘 지은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궁금해 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시면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원래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캐서린 피터슨의 아동문학작품입니다. 테라비시아라는 상상의 왕국을 만드는 두 명의 고독한 아이들을 그린 작품입니다. 전 세계에 24개 언어로 번역되어 500만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숲 근처에 사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아이 제스와 그곳에 새롭게 이사 온 독특한 아이 레슬리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학교생활에서 왕따를 당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제스는 새롭게 전학 온 레슬리와 함께 그들만의 숲을 발견합니다. 그 숲은 숲의 요정과 거인이 살고 있으며 제스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비슷하게 생긴 다양한 괴물들도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그들을 물리치면서 비밀의 숲을 지켜갑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모르는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봤으며 우리는 가보지 못했을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곳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가본 것만큼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실제로 본 곳 그리고 가본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모든 공간에 대하여 비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면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됩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비밀의 공간, 이 영화에서는 숲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제스와 레슬리는 숲을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밧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레슬리는 용감하게 밧줄을 타고 물을 건너갑니다. 이에 놀란 제스는 레슬리가 걱정되어 빠르게 넘어 갑니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숲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큰 나무위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찾게 됩니다. 레슬리는 그 곳에 올라서 주문을 외우고 비밀의 숲에 갇혀있는 이들의 소리를 불러 모읍니다. 제스는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만 레슬리는 바람의 소리를 느낍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그들은 언제나 물을 건너 오두막으로 갑니다. 자신만의 기지를 꾸미기 위해 여러 가지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고치면서 새로운 삶을 찾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서의 왕따는 계속 됩니다. 화장실을 막는 상급생, 교실에서나 주변에서 계속 괴롭히는 동급생 등 어려움은 계속 되지만 숲에 오면 상황은 변합니다. 숲에서 만난 괴물들은 학교에서 괴롭히는 아이들처럼 행동합니다. 제스와 레슬리는 마법의 힘을 이용해 괴물을 무찌르고 자신의 오두막을 지켜냅니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다른 판타지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판타지 이야기나 영화들은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열광했습니다. 이 영화는 환상의 세계는 원래 없다는 것은 전제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그런 것이지요. 감독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또는 보는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는 환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레슬리도 눈을 감고 마음을 크게 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하니 제스에게도 레슬리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서로 공감하며 지냅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교감하는 장면입니다.

제스와 레슬리는 물을 건너 숲으로 갑니다.

아마 다른 길도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꼭 밧줄을 타고 물을 건너 숲으로 들어갑니다.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포탈인 것입니다. 물을 건넌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선의 세계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또는 신령한 곳으로 들어가는 의례중 하나입니다. 궁궐을 들어갈 때도 작은 개천을 건너가고, 왕릉을 갈 때도 작은 개천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산수화를 봐도 나귀를 탄 사람이 개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물을 건서 숲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신비의 세계 또는 돌아오지 못할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의 삶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영화

테라비시아라는 신비의 숲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장소 답사를 계속하던 제작진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북서쪽에 있는 우드힐의 거대한 침엽수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숲이 바로 테라비시아의 배경이 됩니다. 우드힐이라는 숲은 약 12,500 헥타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이 임업을 위해 키운 라디에타파인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 숲은 현재 숲속에서 즐길 수 있는 야외 레크레이션 장소로 유명합니다. 승마, 사륜바이크, 트레킹, 산악자전거, 숲속 모험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해안가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예전에는 토종 수목들과 식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1870년대 영국 사람들이 가지고 온 가축들을 키우고 나무들을 지속적으로 벌목해서 이 숲은 사막처럼 변해 버렸다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에는 해변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의 피해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사막화와 모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1924년 뉴질랜드 정부는 실직자구제펀드에 소속되어 있는 8만 명의 실직자들과 함께 안정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들은 숲을 만들고 가꾸는 일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서 풍성한 숲을 만들어 냅니다. 이 프로젝트는 뉴질랜드 전역에 모범적인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도 숲을 잘 이용하기 위해 여러 제도(Crown Forest Asset Act)를 만들고 실시하고 있습니다.


라디에타파인

우드힐에 심겨져 있는 대부분의 나무는 라디에타 파인입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많이 심고 있는 조림용 수종입니다.
뉴질랜드에도 예외 없이 라디에타파인을 많이 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뉴송’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됩니다. 뉴질랜드에서 온 소나무라는 뜻으로 뉴송입니다. 그런데 꼭 뉴질랜드산 소나무만 뉴송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칠레, 호주 등지에서 드려온 나무도 모두다 뉴송이라고 합니다. 같은 나무이기 때문에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라디에타파인은 캘리포니아 중부지방이 원산지이기는 하지만 현재 호주나 뉴질랜드 등에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목재의 질감은 좋지만 옹이가 많은 편이고 성장이 빨라서 나이테가 매우 넓은 편입니다. 크기는 높이가 약 40~50m , 직경은 약 1m 정도까지 자안다고 합니다. 연간 생장량이 핵타당 18m3이나 된다고 합니다. 라디에타파인은 곧게 자라면서 목재의 가치도 높다고 합니다.

라디에타파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원목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비하여 수려하고 깔끔한 무늬결을 가지고 있어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수종입니다. 수입량은 스프러스와 레드파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약 2,543,000㎥(2014년)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라디에타파인 숲은 양 갈래로 갈라지고 이리저리 굽고 가지도 거칠게 나 있는 나무가 있는 숲이 주요 배경이었습니다. 좋은 목재를 위해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굽고 휘고 어두운 모습으로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란 모습이 영화에서는 딱 알맞은 숲이 된 것 같습니다.



숲에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숲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레슬리와 제스 둘만 그곳에서 온전한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 누구도 그곳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제스의 여동생조차도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거인, 다람쥐같이 생긴 괴물, 독수리 비슷한 새, 그리고 꿀벌 요정, 등 다양한 생명체를 볼 수 있으며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저의 어릴 때로 돌아가 보면 저도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산에 가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나무 막대기로 나무를 치고 풀을 자르고, 아이들과 칼싸움을 했을까요? 지금 어른이 되어서 보면 의미 없는 행동이고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작은 아이에게 요정이 보이고 괴물이 보였다면 그건 아마 엄청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에게는 그런 요정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슬프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보이는 여러 환상을 만들어 주기위해서는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본 만들어진 캐릭터로 가득 찬 곳이 아닌 곳, 즉 숲이라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별 그리고 완성

제스는 선생님과 함께 박물관에 갑니다. 레슬리도 부를까 하다가 그냥 출발합니다. 그날 레슬리는 물을 건너려다가 줄이 끊어지고 나무가 쓰러지면서 정말 다른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제스는 그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같이 있지 않아서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제스는 슬픔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숲으로 가 봅니다. 줄은 끊어져 있고 나무는 쓰려져 있었습니다.

물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서도 레슬리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제스를 찾으러 온 동생도 못 들어오도록 밀어버리고 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어떻게 할 지 모르게 됩니다. 이제 비밀의 숲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줄이 끊긴 곳에 넘어진 나무를 보고 비밀의 숲으로 들어갈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사 가는 레슬리의 아버지에게 남은 목재를 쓸 수 있도록 부탁해서 다리를 고치고 난간도 만들어서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로 들어가는 다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만들어 놓은 다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제스는 테라비시안에게 이야기 합니다.

미래의 지배자가 왔다고요. 동생 메이벨은 누가 듣고 있냐고 물어봅니다. 동생에게 아직 이곳이 그저 어두운 숲일 뿐인 것입니다. 예전 레슬리가 제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있어 마음의 문을 넓게 열어봐!” 라고 말입니다. 이제 동생 메이벨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라색 꽃과 거대한 거인, 큰 성 그리고 테라비시아에 있는 모든 생물들이 오빠와 동생에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비밀의 숲은 이제 마음을 여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변합니다.



숲 우리들만의 공간

사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스토리는 약간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곳에서 우정과 사랑을 키우며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모험을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 또는 외부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또는 우울감을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다시 실생활로 돌아오면 어려움을 반복해서 격지만 그들은 숲에서 풀어내고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슬픔이 찾아오고 이를 극복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생활합니다.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만들어낸 세계이고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그것에 자신을 던져서 일체감을 가지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보고 반성하거나 기뻐하고 슬퍼하면 되는 영화입니다. 또한 보통 죽음을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간단하거나 아주 길게 묘사되는데 이 영화는 어중간한 길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이야기 보다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숲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영화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연기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람이 나옵니다. 저에게만 특별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터미네이터 2탄의 T1000이 나옵니다. 제스의 아버지로 나오는데 화를 낼 때는 바로 액체로 변해서 공격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가장으로 나옵니다.

여자주인공은 이 영화의 영화음악도 불렀는데 이 영화의 주제인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라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영화중에서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를 보면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습니다.
아주 비슷한 구조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 들도 개울을 건너 숲에 갔다가 소나기를 만나고 여자아이는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 소나기를 봤습니다. 아주 오래전 영화인데 소설 보다 길고 약간은 지루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달리기를 정말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보랏빛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조금 미화해서 표현하자면 우리 삶의 행복은 숲과 인간관계 그리고 환상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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