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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원예서에 나타난 꽃과 나무의 지위(양화소록과 화암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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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꽃은 이미 본절에서 소개한 바 있는 것처럼 장미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좋아하는 꽃이 같으라는 법은 없으며 사회적 흐름이나 개인의 취향이 변하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란은 신라 때, 매화는 고구려 때, 국화는 백제 때 각각 길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고 있다. 어떤 특정한 꽃을 길렀다는 것은 그 만큼 그 꽃을 선호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가장 사랑받았던 꽃은 매화, 모란, 국화였다. 구체적인 예를 다음에 찾아보기로 한다.

꽃의 등급을 자세하게 소개한 역사서는 조선시대 발간된 『양화소록(養花小錄)』과 『화암수록(花菴隨錄)』이라는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조선시대 2대 원예서적이라 부를 정도로 문헌적 가치가 뛰어나다. 두 권 모두 조선시대 양반들의 원예취향과 원예 문화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양화소록(養花小錄)

양화수록의 저자는 강희안(姜希顔, 1417~1464)으로서 세종 때의 명신으로서 벼슬은 부제학에 올랐다. 시와 글과 그림에 능통하여 3절(三絶)이라 불리었다. 만년에는 세상사 벼슬에 뜻이 없어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면서 예술인의 진가를 발휘하였다고 한다.

강희안은 화가탓도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식물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꽃과 나무를 기르는 방법을 체득하여 실전에 응용하며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양화소록은 화훼와 원예에 관한 서적으로서 『진산세고(晉山世稿)』권4에 수록되어 있다. 

『진산세고』란 문신으로서 강희안의 동생인 강희맹이 할아버지 강회백, 아버지 강석덕, 형 강희안의 행장(行狀)과 시문을 엮어 만든 강씨 삼대(三代)의 삼세고(三世稿)이다. 4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제4권에 서거정과 최호라는 사람이 쓴 강희안의 시문집발과 함께 『양화소록』수록되어 있다. 성종 7년인 1476년에 간행된 것으로서 조선시대 화훼분야 전문서적 중 가장 오래 된 서적이다. 『진산세고』는 1998년에 보물 제1290호로 지정되었다.

『양화수록』은 화초나 나무를 가꾸는 방법과 약간의 괴석(怪石)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식물의 생육 특성을 거울삼아 인재를 기르고 다뤄야 한다라는 비유들을 피력하고 있어서 단순한 원예서적으로서 이해될 성질의 책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내용 중심은 어디까지나 식물 재배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책의 글머리에 ‘이제 보고 들은 바에 따라서 화초의 성품과 재배하는 법을 기록해서 청천양화소록(菁川養花小錄)이라고 이름하니, 이는 산림에 묻혀 소일하고 일거리를 삼자는 것이오, 한편으로는 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취미를 함께 하고자 함이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에게 강희안이 이 책에서 꽃이나 나무의 등급을 자세하게 구분하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인 듯하다. 이와 같이 강희안이 꽃나무의 등급을 상세하게 구분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을유문고가 1973년에 이병훈 역으로『양화수록』을 번역 출간하면서 별다른 언급없이 부록에 『화암수록』이라는 것을 소개하였다. 

여기에 꽃나무의 등급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독자들은 이 내용들을 강희안의 것으로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화암수록』의 저자는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양화소록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노송(老松), 만년송(萬年松), 오반죽(烏班竹), 국화, 매화, 혜란, 서향화, 연꽃, 석류꽃, 치자꽃, 사계화와 월계꽃, 산다화(동백), 자미화(백일홍), 일본철쭉, 귤나무, 석창포의 순서이다. 이 같은 기술 순서는 어떤 특별한 기준에 의해서 정하여 쓴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의 보편적인 습성으로 볼 때 대개 좋아하는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 난, 연꽃 등은 조선시대 창작된 시서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만큼 선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른 한편으로, 양화소록의 부록에 수록된 『화암수록』에는 강희안이 꽃나무를 9가지 등품으로 구분한 화목구품(花木九品)을 소개하고 있는 반면, 본문에는 어떤 이유로 그 내용이 담겨있지 않은가에 대해서 의아스럽게 한다. 화목구품의 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각 등급마다 어떤 기준으로 품계를 매겼는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강희안의 화목구품
구분
해당 식물
1품
소나무, 대나무, 연꽃, 국화
2품
모란
3품
사계화, 월계화, 왜철쭉, 영산홍, 진송(眞松), 석류나무, 벽오동
4품
작약, 서향화, 노송, 단풍나무, 수양버드나무, 동백나무,
5품
치자나무, 해당화, 장미, 홍도, 벽도, 삼색도, 하얀 진달래(백두견), 파초, 전춘라(翦春羅), 금잔화
6품
백일홍, 홍철쭉, 분홍진달래(홍두견), 두충나무
7품
이화(배나무꽃), 행화(살구나무꽃), 보장화, 정향나무, 목련
8품
촉규화(蜀葵화), 산단화(山丹花), 옥매, 출장화(出墻花), 백유화(白萸花)
9품
옥잠화, 불등화, 연등화, 연교화, 초국화, 석죽화, 앵속각, 봉선화, 계관화, 무궁화


화암수록(花菴隨錄)

『화암수록』은 지금까지 화암수록은 지금까지 강희안(姜希顔) 혹은 송타(宋拖)로 알려져 있었고, 또한 2002년도 수능 시험에서도 출제되어 작가가 송타로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한양대 정민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조선조 중후기에 살았던 유박(柳璞, 1730~1787)이라는 사람이 지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저자가 유박이라는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이 있기에 본서에서는 화암수록의 저자를 유박으로 소개한다. 유박은 황해도 배천군 금곡포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능력은 있으되 뜻한 바 있어서 벼슬을 하지 않고 꽃을 심어 가꾸면서 문인들과 교분하던 사람이었다. 

꽃으로 장식한 그의 집을 백화암(百花庵)이라 부르고, 화암수록(花菴隨錄), 화암구곡(花菴九曲), 매농곡(梅儂曲) 등을 남겼다.

조선시대 18세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꽃과 나무를 가꾸는 화훼와 정원문화의 발달이다. 이러한 시대적 특징 속에서 나온 책이 『화암수록(花菴隨錄)』이다.

유박은 식물을 아름다움보다 그 상징적 의미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었다.

 각 등급마다 5가지씩 총 45종과 등외로 12종을 더하여 총 57종의 식물이 소개된다. 이를 유박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라고 한다. 등급 구분에 있어서 기준이 된 상징적인 단어들은 높고 뛰어난 운치, 부귀, 절개, 번화 등이다. 식물의 각 등급별 지위를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유박의 화목구등품제
9등급
기준
해당 식물
1등
높고 뛰어난 운치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 소나무
2등
부귀
모란, 작약, 왜홍(일본철쭉, 영산홍), 해류(海榴, 花石榴, 百葉榴), 파초
3등
운치
치자, 동백, 사계(월계), 종려, 만년송(노송)
4등
운치
화리(華梨), 소철, 서향화, 포도나무, 귤나무
5등
번화
석류, 복숭아나무, 해당화, 장미, 수양버드나무
6등
번화
두견화, 살구나무, 백일홍, 감나무, 오동나무
7등
각각의 장점
배나무, 정향나무, 목련, 앵도나무, 단풍나무
8등
각각의 장점
무궁화, 석죽, 옥잠화, 봉선화, 두충나무
9등
각각의 장점
해바라기, 전추라, 금잔화, 창잠(석창포), 화양목
등외
능금나무, 단내, 산수유, 위성류, 백합, 상해당, 산단화, 철쭉, 백자, 측백나무, 비자나무, 은행나무

대체적으로 유박 시대로부터 다시 250여년이 지난 지금의 꽃에 대한 선호도를 비교해 보면 많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꽃이라도 그 품종에 따라 각양각색이니 꽃의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것은 꽃을 감상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지 모른다. 장미만 해도 그 품종은 무려 15,000여종에 달한다고 하며 계속해서 신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꽃의 모양도 홑꽃, 겹꽃, 중겹꽃 등으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색깔 역시 흰색, 핑크색, 복숭아 색, 붉은색, 노란색, 흑장미로 불리는 적자색(赤紫色) 등으로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러니 특정한 모양과 색깔의 장미를 좋아한다기보다 장미의 감춰진 이미지를 사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식물의 품등 구분에 있어서 단지 외형의 아름다움만 보고 판단하여 취한다면 그 등급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강희안과 유박은 하나하나의 식물 속에 숨겨있는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높고 뛰어난 운치(高標逸韻)가 있는 식물을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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