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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소나무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

앞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소나무는 선조들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임이 확인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성적 측면과 이성적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첫째, 감성적 측면에서 판단해 보면, 늘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봄으로써 정이 드는 것은 이성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지닌 특징이다. 이것은 운명적이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 

상극이고, 겉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남녀 사이도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하물며 나무 중에서도 사시사철 늘 푸른 색을 지닌 나무를 누구인들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소나무를 늘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은 소나무가 운명적으로 우리 한반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적어도 17,000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군신화가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5000년 전 단군시대의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났을 때는 이미 울울창창한 소나무로 사방이 뒤덮혀 있었을 것이다. 원시종교에서 보듯, 하늘을 찌를 듯한 장대한 키와 몸집으로 그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를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외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나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민족의 몸과 마음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어 왔다. 생사의식주(生死衣食住)를 지배해 왔으니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성적 측면에서 판단해 보면, 운치와 기상이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붉으스름하고 꿋꿋한 줄기와 늘푸른 잎으로 인하여 나무로서 청렴성과 기상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품위와 운치가 두드러진다. 강희안이나 유박의 화목품등 구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과거부터 식물을 선호함에 있어서 운치를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삼아 왔다. 그래서 소나무를 좋아하는 마음은 바로 소나무가 지닌 운치 때문인데 이것도 우리 민족에겐 역시 운명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소나무 선호의 역사기록들

소나무에 대해서 기록한 역사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겠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양화소록』에서 강희안은 소나무에 대해서 중국인들이 생각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관찰어사를 지낸 당나라 시인 부재(符載)가 쓴 『식송론(植松論)』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소나무를 숭산(嵩山)이나 대산(垈山)에 심으면 북쪽 바다의 빛나는 기운이 안에서 서리고 해와 달의 밝은 빛이 밖에서 비치며, 상서로운 봉황새가 그 위에서 너울거리고, 맑은 샘물이 그 아래로 흐르며, 시원한 바람소리는 피리소리를 무색하게 한다. 

그 뿌리는 황천 깊이 뻗어가고 가지는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하다. 소나무야말로 명당의 기둥감이오 큰 집의 대들보 감이니 나무 중의 나무이다.

또한 강희안은 같은 책에서 중국 당나라의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유유주(柳柳州)라는 사람이 쓴 편지글에서 소나무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였다; 소나무는 바위틈에 나서 천 길이나 높이 솟아 그 곧은 속대와 거센 가지와 굳센 뿌리를 가지고 능히 추위를 물리치고 엄동을 넘긴다. 그러므로 뜻있는 군자는 소나무를 법도로 삼는다.

소나무를 나타내는 한자는 송(松)이다. 이것은 ‘木’와 公’자로 이뤄져 있는데 ‘公'이란 공작, 백작, 후작 등의 작위에서 가장 선도적 위치의 작위를 말한다. 그리하여 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나무를 바로 松(소나무)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소나무라는 말도 우리 말에서 솔 혹은 솔나무라고도 하는데 ’솔‘이란 최고, 으뜸,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으뜸가는 나무를 ’솔나무‘라고 하는 것인데 ‘ㄹ’탈락 현상으로 소나무가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을 보면, 묘지 주변에 나무를 심을 때 고인이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서 심는 나무를 달리하였다고 한다. 즉, 천자 묘지에는 소나무를 심고, 제후 묘지에는 잣나무를 심으며, 대부 묘지에는 밤나무, 선비 묘지에는 느티나무,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묘지에는 나무를 심지 못하는 등 등급이 있었다.

또한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걸어두는 일월곤륜도 등에 나타난 그림을 보면 소나무는 항상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소나무는 국가 사회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의 사회적 지위 사례

석송령(石松靈)

석송령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 석평마을에 있는 나이 600여년 된 소나무이다. 나무높이는 10m, 가슴높이 줄기 지름은 1.34m, 수관폭은 남북방향 22m, 동서방향 32m, 그늘 면적은 300여 평에 이른다.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생육 형태상 반송(盤松)이라고 한다. 이 소나무는 법원에 석송령이라는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무인데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소나무를 석송령이나 일명 부자나무라고 하는 유래를 알아보자.




천연 기념물 안내 간판에 기록된 설명문을 참고하여 소개하면 이렇다. 약 600여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마을 앞을 흐르던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이 소나무를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건져 현재의 자리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로 1930년경 당시 이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살았는데 재산을 물려줄 후손이 없었던지라. 생각한 끝에 개천가에 서 있는 이 소나무가 영험이 있는 나무라 생각하여 그 이름을 석송령이라 짖고 자기 소유의 땅 6,600㎡를 상속하도록 등기해 주었다. 이때부터 소나무 석송령은 사람과 동등하게 법적인 이름을 갖고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도 내는 부자나무로 불리게 되었다.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마을 학생들에게 석송령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한다.

행사가 열리면 매년 마시는 막걸리의 양이 10말도 넘는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에게 석송령은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관장하는 동신목, 혹은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고 안녕과 협동심을 북돋아주는 신목(神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천 땅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이것은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황근목(黃根木)이라 부르는 팽나무이다. 황근목은 4000여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 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이품송(正二品松)

정이품송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에 있는 소나무이다. 나무의 나이 약 800년, 높이 약 15m, 가슴높이 지름 약 1.5m이다.




정이품송이라고 불리는 연유를 문헌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조선시대 세조(1455~1468)가 속리산으로 행차하고 있었다. 앞으로 진행하던 중 마침 앞쪽에 큰 소나무의 가지가 늘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임금의 가마(輦)가 계속해서 진행할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하여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솔가지가 저절로 쳐들려져서 가마가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신기하게 여긴 왕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장관급)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 후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 또는 ‘연걸이 소나무’로 불려지게 되었다.

소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나이가 오래 된 나무일 뿐더러, 자태가 아름다워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주위에 후계 소나무들을 심어 놓아 대를 잇도록 하고 있다.


성주신(城主神)

성주는 원래 하늘에 있던 신이었는데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왔다. 거처를 마련하고 살려고 살펴보니 집이 없었다. 이에 천신께 집을 주십사 빌었다. 그랬더니 천신은 ‘안동 땅 제비원에 가서 솔씨를 받아다 뿌려 자라거든 재목으로 베어다가 집을 짓고 살아라’ 하였다. 천신의 말씀을 받들어 제비원으로부터 솔씨를 얻어 주위에 뿌려 자란 다음 기둥감, 서까래감을 구별하여 골라내었다. 가장 듬직하고 미끈한 소나무를 상량보(上梁보, 대들보)로 베어내어 집을 짓고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성주신은 성주(城主), 즉, 성의 주인, 말하자면 집주인 신이라는 뜻이겠다. 민간 신앙에서는 집 안 곳곳에서 그 공간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부엌을 관장하는 부엌신, 뒷간(廁間)을 다스리는 측신, 마루를 다스리는 신, 안방신 등.

이처럼 집안 곳곳을 다스리는 신들을 총칭하여 가신(家臣)이라고 하는데 성주신은 가신 중에 우두머리 으뜸신으로서 집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는 대들보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대들보는 꼭 굵고 통직한 소나무 재목으로 만든다. 그 이유는 앞서 성주신의 유래에서 밝힌바와 같이 소나무 속에 하늘에서 내려온 성주신이 보셔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대들보를 올릴 때에는 꼭 대들보를 올리는 의식을 하는데 이를 상량식(上梁式)이라고 한다. 상량식에서는 상량문을 지어 올리고 성주맞이와 성주굿을 한다. 성주맞이는 성주받이 또는 성주풀이라고도 하는데 ‘집주인’인 성주신을 들이는 의식이다. 성주굿은 성주신에게 재앙을 물리치고 행운을 들이게 해 달라고 비는 굿이다. 상량식이나 성주맞이는 일반 가옥의 건축에서는 물론 도심의 빌딩, 아파트, 공장 건축 등 구분없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성주신의 예에서 보듯이 소나무는 전통 민간 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신을 대표하고 집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성주신으로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십장생(十長生)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소원은 심신의 아무런 병없이 오래 사는 무병장수일 것이다. 젊음과 건강을 유지한 채 영생(永生)하고자 하는 소망은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된 희망사항이다. 인간의 이러한 염원 속에서 나온 것이 십장생이다.

십장생은 도교(道敎)와 민간 신앙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10가지 사물을 말한다. 십장생의 10가지는 문헌이나 사람에 따라서 달리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꼭 지정된 것은 아닌 듯하다. 십장생에 등장하는 것들을 보면, 해, 달, 돌, 물, 구름, 소나기, 산, 학, 거북, 사슴, 산, 개천,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복숭아나무 등이 거론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이 고래(古來)로부터 추구해온 무병장수와 영생을 위한 염원으로 소나무와 대나무와 불로초, 복숭아나무를 숭앙하고 있다. 지구상에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식물종 가운데, 이들 식물만이 십장생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십장생은 이들이 인간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고차원적인 사회적 상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기타 식물의 사회적 지위

그 밖에 식물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국가의 중요 행사시 대통령이나 장관은 기념식수를 한다. 

취임을 기념하고 건축을 기념하며, 이모저모로 나무를 심는다. 기념 식수로 많이 쓰이는 나무들은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훌륭한 외관을 갖추고 비싼 나무를 심는다. 주목, 소나무 등을 기념식수할 때 많이 심는다. 

산림청은 새로운 천 년을 기념할 수 있는 나무를 심고자 수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느티나무를 선정하고 여러 곳에 심었다. 2000년에 있어서 느티나무는 나라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 나무였다.

각종 의식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기념하고 상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무나 꽃을 항상 사용하고 있다. 

나무나 꽃이 없으면 기념식장은 썰렁하고 허전하다.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손에 부케가 들려있지 않다면, 그리고 신랑의 예복에 꽃이 꽂혀 있지 않다면 순결하고 성결스러워야 할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할 것이다. 적재ㆍ적소ㆍ적시에 식물에게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의식을 기념하고, 장소의 특성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인간의 품격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로 생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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